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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옷차림과 복, 새옷을 사는것은 복 낭비일까?

새해에 옷을 어떻게 입느냐는 사소한 문제 같지만, 동양의 오래된 전통에서는 그렇게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 옷차림은 그 사람의 기(氣)가 바깥으로 드러나는 첫 번째 통로이고, 주변 사람에게 전달되는 첫 번째 인상이다. 설날이 다가오면 새 옷을 입는 풍속이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한 해의 기운을 새롭게 세우는 행위에 가깝다.

도를 닦는 사람 중에 옷차림을 극도로 소홀히 하는 부류가 있다. 검소함을 실천한다는 명분이다. 아끼고 줄여서 복을 쌓겠다는 뜻이겠으나, 이것이 지나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때가 끼고 얼굴에는 생기가 없으면,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이 수행하는 도(道)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된다. 자기 한 사람의 절약이 열 사람의 마음을 닫게 만드는 셈이다. 복을 아끼려다 더 큰 복을 흘리는 꼴이 된다.

도덕경(道德經) 70장에 被褐懷玉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거친 베옷을 입었으되 품 안에는 옥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읽으면 허름하게 입으라는 가르침 같지만, 사실 노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겉모습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지, 겉모습을 망가뜨리라는 것이 아니다. 옥을 품고 있다는 것은 안에 덕(德)이 충만하다는 뜻이고, 거친 옷이라는 것은 굳이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핵심은 과시하지 않는 것이지, 자기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도덕경 12장에는 五色令人目盲이라는 경고가 있다. 다섯 가지 색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지나친 화려함은 감각을 마비시키고, 마비된 감각은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53장에서도 노자는 화려한 무늬 옷을 입고 날카로운 칼을 차며 맛있는 음식에 물리도록 먹는 자들을 가리켜 도둑의 우두머리라 했다. 지나치게 꾸미는 것은 기를 흩어지게 만들고, 흩어진 기는 사람을 들뜨게 한다. 들뜬 사람에게는 복이 머물 자리가 없다.

그렇다면 어디가 적당한 지점인가. 옛사람들은 이것을 의관정제(衣冠整齊)라는 네 글자로 정리했다. 옷과 갓을 바르게 한다. 바르게 한다는 것은 비싸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깨끗하고, 단정하고, 격에 맞게 한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아침에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는 것을 하루의 수양 첫 단계로 삼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겉을 바르게 하면 안이 따라 바르게 된다는 것은 동양 수양론의 오래된 원칙이다.

도교 수행에서도 이 원칙은 다르지 않다. 재초(齋醮)를 올릴 때 도사(道士)가 법복을 갖추어 입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기를 하나로 모으는 과정이다. 고려시대에는 국가 차원에서 도교 의식인 초제(醮祭)를 거행했는데, 이때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의복을 정갈하게 갖추는 것이 기본 예법이었다. 의복이 정갈해야 기가 맑아지고, 기가 맑아야 의식이 제대로 통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이 원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2012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복장이 단정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확률이 높았고, 본인 스스로도 자기 효능감이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을 학자들은 “enclothed cognition”이라 불렀다. 입은 옷이 인지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옛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던 것을 현대 심리학이 뒤늦게 확인해 준 셈이다.

결국 문제는 두 가지 극단 사이에 있다. 한쪽 끝에는 과시와 사치가 있고, 다른 쪽 끝에는 방치와 무관심이 있다. 도(道)는 언제나 그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다. 노자는 이것을 중(沖)이라 했다. 비어 있되 무궁무진한 그 자리. 옷을 입는 일에도 그 자리가 있다. 너무 비싸지 않되 깨끗하고, 너무 화려하지 않되 기색이 밝고, 너무 고르지 않되 단정한 것. 이것이 사람의 기를 모으고 복을 머물게 하는 옷차림이라 할 수 있다.

새해에 새 옷을 입는 것은 그래서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다. 한 해의 기운을 새로 고르는 일이다.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단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의 기를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을 사치라 여겨 움츠러드는 것은 복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복이 들어올 문을 닫아거는 것에 가깝다. 반대로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하고 남들의 시선을 끌겠다는 것은 기를 바깥으로 흩어 보내는 일이다.

장자(莊子)의 달생(達生)편에는 나무를 깎아 종거(鐻)를 만드는 장인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그 솜씨에 탄복하자 장인은 말했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재계(齋戒)를 하여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고. 삼일이면 상과 벌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고, 오일이면 남의 평가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고, 칠일이면 자기 몸이 있다는 것조차 잊는다고. 그 상태에서 비로소 숲에 들어가 나무를 고른다고 했다. 옷을 입는 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고, 자기를 숨기기 위한 것도 아닌, 그저 자기 기운을 바르게 세우는 것. 그것이 이 설날에 옷을 고르는 일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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