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호감에서 혐오로, 되돌릴 수 없는 강물

중국에서 20년 가까이 살았고, 중국과의 인연은 30년이 되간다. 2000년대 초반, 중국의 대기업 회장부터, 작은 도시의 정치 관원까지 만나기만 하면 한국 드라마가 화제였다. 대장금, 겨울연가. 그들의 입에서 한국 드라마 이름이 튀어나왔다. 1997년 CCTV에서 방영된 사랑이 뭐길래는 중국 역대 수입 영상물 2위를 기록했고, 2005년 대장금은 후난위성TV에서 외국 드라마 사상 최초로 시청률 14%를 넘겼다. 중국에서 시청률 1~2%만 되어도 인기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열기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호감의 뿌리가 묘한 곳에 있었다. 문화대혁명. 1966년부터 10년간 중국은 스스로의 전통을 파괴했다. 홍위병들은 공자의 묘소를 파헤치고, 유교 경전을 불태우고, 전통 예절을 반동으로 몰아 청산했다. 분서갱유와 문자의 옥을 합쳐도 미치지 못할 규모였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에는 그들이 잃어버린 것들이 남아 있었다. 어른에게 두 손으로 잔을 올리는 예절, 제사상 앞에서 고개 숙이는 자손들, 효와 충의 서사. 문화혁명으로 증발해버린 유교적 삶의 잔영이 한국 드라마 속에서 살아 숨 쉬었다. 그들은 향수를 느꼈고, 그것이 호감이 되었다.

그런데 그 호감이 십수 년 사이에 혐오로 뒤집혔다. 내가 직접 목격한 변화다.

중국 유학생들이 한국에 갔다. 2000년대 중반부터 그 숫자가 급증했다. 그들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달라졌다. 짱깨. 더러운 중국. 한국 뉴스에서 매일같이 나오는 중국산 먹거리 문제. 그들은 한국에서 환대가 아니라 멸시를 경험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경험을 인터넷에 풀었다. 웨이보, 바이두 티에바, 지후. 개인의 분노가 집단의 서사가 되었다.

2005년, 강릉 단오제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중국 인터넷이 발칵 뒤집혔다. 한국이 단오를 훔쳐갔다. 1억 명이 넘는 젊은 네티즌들이 분노했다. 실제로 강릉 단오제와 중국의 단오절은 전혀 다른 것이다. 강릉 단오제는 대관령 산신에게 올리는 천 년 된 지역 제의이고, 중국 단오절은 기원전 4세기 시인 굴원의 죽음을 추모하는 풍습이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분노 앞에서 무력했다. 문화 도둑놈. 까오리 빵즈. 그 단어들이 중국 인터넷에 자리 잡았다. 당시 나는 중국어로 블로그를 쓰고 있었고, 나름 유명 블로그였어서, 수많은 중국인들이 찾아와서, 항의를 하거나 물어봤다. 많은 오해에 대해서, 설명하는 글을 올렸었다. 그렇지만,

여기에 역사 왜곡 루머가 기름을 부었다. 공자가 한국인이라고? 한자도 한국이 만들었다고? 중국 땅도 원래 한국 것이라고? 일부 극단적인 주장들이 마치 한국의 공식 입장인 것처럼 중국 인터넷에서 확대 재생산되었다. 사실 확인은 되지 않았다. 분노만 확인되었다.

한국 쪽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이 참전해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는 역사적 기억. 2004년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 2017년 사드 배치에 대한 경제 보복. 코로나19 기원 논란. 한복, 김치 기원 주장. 각각의 사건이 켜켜이 쌓이며 혐중 정서가 고조되었다. 2020년 퓨 리서치 조사에서 한국인 71%가 중국에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사드 시절, 내가 출장을 가면, 술자리에서 나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인간들이 있었다.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것도 아닌데, 단순 상업 방문인데, 사드 설치했다고, 벌로 술을 마시라고 하고, 사과하라고 하고, 문제는 그게 농담이 아니라, 진심에 진지한 모습이었다는 거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방중에서 혐한, 혐중 정서가 많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이 의기투합하고 있다고 했다. 불필요한 오해로 빚어진 민간의 혐오 정서를 걷어내고 서로에게 필요한 훌륭한 이웃으로 함께 발전하자고 제안했다. 정상 간의 악수, 공동성명, 외교적 수사. 그것들은 필요하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다.

문제는 구조다. 십수 년간 축적된 혐오는 이미 각자의 인터넷에 아카이브되어 있다. 한국인이 중국을 비하하는 영상은 중국 인터넷에서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돌아다닌다. 중국인이 한국 문화를 훔쳤다고 주장하는 영상은 한국 인터넷에서 똑같이 확산된다. 개개인의 언행이 순식간에 상대국 전체에 전달되는 시대다. 정상회담장에서 악수하는 동안에도, 양국의 누군가는 상대를 조롱하는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

국가가 이것을 통제할 수 있는가. 2025년 서울에서 혐중 시위가 벌어졌다. 명동에서, 종로에서 자유대학이라는 단체가 시위를 주도했다. 오성홍기를 찢고, 중국 대사의 얼굴이 인쇄된 현수막을 훼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를 깽판이라고 비판했고, 정부는 혐오 발언 공무원 당연퇴직 등 강력한 대응을 예고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이것을 혐오가 아니라 반중, 즉 중국 정부의 행태에 대한 정당한 항의라고 주장한다. 그 경계는 누가 긋는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당시 서울에서 충돌이 있었다. 중국 유학생들이 몰려와 시위대와 물리적 충돌을 벌였다. 그 영상이 한국 인터넷에 퍼졌다. 중국 애들이 우리 땅에서 난동을 친다. 그 분노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감정은 사건이 끝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인터넷에 기록되어 언제든 다시 소환된다.

일본의 혐한 시위를 생각해본다. 신오쿠보에서 재특회가 극성을 부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KBS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치권이 혐오 시위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고, 시민들이 맞불 집회로 대응했다고 한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 사이에 그런 시민 연대가 가능한가. 양국 시민이 서로의 혐오 시위를 보며 공감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1997년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서 방영되던 때, 그 드라마를 보며 눈물 흘리던 중국인들이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지금은 까오리 빵즈를 입에 달고 산다. 호감은 쉽게 생기고 쉽게 사라진다. 혐오는 쉽게 생기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긍정적 경험은 평균으로 기억되지만, 부정적 경험은 극단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한 번 당한 모욕은 백 번의 친절을 지워버린다.

양국 정상이 손을 잡고 웃는 사진이 뉴스에 나온다. 그 사진이 웨이보에 올라가면, 댓글창에는 어떤 말들이 달릴까. 한국의 뉴스 사이트에서는 또 어떤 반응이 나올까. 정상회담은 외교다. 그러나 혐오는 외교가 아니다. 그것은 개개인의 감정이고, 경험이고, 기억이다. 국가가 서명하는 문서로는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일단 흐르기 시작한 물을 거슬러 올리기는 어렵다.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이 혐오로 바뀐 과정을 나는 18년간 지켜보았다. 그것은 어느 한 순간의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수많은 작은 모욕들, 뉴스 보도들, 인터넷 게시물들, 유학생들의 경험담들이 방울방울 모여 강물이 되었다. 그 강물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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