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인생은 때때로 비워야 한다

영(零)이라는 글자는 묘한 구석이 있다.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그 안에 모든 가능성이 웅크리고 있다. 노자가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이라 했을 때, 그 도(道)라는 것이 바로 이 영의 상태가 아닐까 싶다. 만물이 거기서 나와 거기로 돌아간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더하기에만 익숙하다. 경력을 쌓고, 재산을 불리고, 인맥을 넓힌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덜어내는 일이다. 노자가 “위도일손”이라 했다. 도를 닦는 일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다. 덜고 또 덜어서 마침내 무위에 이른다. 무위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상태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났을 때 그는 완전히 바닥이었다. 그가 나중에 한 말이 있다. “해고당한 건 내 인생 최고의 일이었다. 성공해야 한다는 무거움이 다시 초보자가 된 가벼움으로 바뀌었다.” 그는 넥스트를 창업하고 픽사를 키웠다. 1997년 애플로 돌아왔을 때, 그 비워진 시간이 없었다면 아이폰도 없었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것을 “founder’s reset”이라 부른다. 창업자의 리셋. 한번 크게 실패하고 돌아온 사람이 더 강하다는 뜻이다.

노자가 “견소포박, 소사과욕”이라 했다. 물들이지 않은 실, 다듬지 않은 나무처럼 본래 그대로를 지키라는 말이다. 사람 마음이 복잡해지는 건 대개 욕심 때문이다. 더 갖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고, 더 특별해지고 싶다. 그런데 그 욕심들을 잔뜩 쥐고 있으면 새로운 것이 들어올 틈이 없다. 주먹을 꽉 쥐면 손에 아무것도 없지만, 손을 펴면 세상을 담을 수 있다.

일본에서 은퇴한 경영자들이 선(禪) 수행을 하러 절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이 거기서 하는 일은 별것 없다. 마당 쓸고, 밥 짓고, 좌선한다. 평생 남을 부리던 사람들이 스스로 화장실 청소를 한다. 그게 뭐가 대단한가 싶겠지만, 그들은 거기서 자신을 비운다. 과거의 직함, 업적, 권위 같은 것들을 내려놓는다. 빈 그릇이 되어야 새 물을 담을 수 있다는 걸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뱀이 허물을 벗지 않으면 자라지 못한다. 게가 껍질을 버리지 않으면 더 큰 껍질을 얻지 못한다. 옛것을 붙들고 있으면 새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이건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옳다고 믿어온 것들, 익숙한 방식들, 그것들을 한번 비워보지 않으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 없다.

노자가 “道者反之動也”라 했다. 도는 되돌아가는 움직임이다. 이건 퇴보가 아니다.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겨울이 만물의 기운을 거두어들이는 건 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수련하는 사람들이 “返本還原”을 말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 세상에 치이고 때가 묻기 전, 그 처음의 마음으로.

어떤 사람은 잘 나가다가 갑자기 모든 걸 내려놓고 다른 길을 간다.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한다. 그런데 몇 년 후 보면 그 사람이 훨씬 더 자유로워 보인다. 비웠기 때문이다. 성공도 비워야 하고, 실패도 비워야 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은 일종의 부활이다.

세상일을 겪어보면 결국 담백한 게 가장 낫다. 화려한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노자가 “五色令人目盲”이라 했다. 다섯 빛깔이 눈을 멀게 한다. 자극이 강한 것들은 결국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단순한 것, 소박한 것, 그것이 오래 간다.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일, 그것은 포기가 아니다. 진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우리가 가는 모든 길은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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