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업의 해소

음양순성(陰陽順性)이라는 도교 기법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것은 영혼의 상태가 반영된 영계의 공간을 방문하여 전생의 기록을 열람하고, 현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업력의 근원을 파악하며, 필요한 조정을 받는 술법이다. 지부영사(地府靈舍)에서는 과거 업의 원인을 보고, 본명원부(本命元府)에서는 현재 상태를 확인한다. 삼세인과권(三世因果卷)이라는 두루마리를 펼치면 전생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이 기록들을 보다보면, 어떤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생에서 타인을 배신했던 사람은 이번 생에서 배신을 당하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놓인다. 전생에서 권력을 남용했던 사람은 이번 생에서 무력감을 경험한다. 전생에서 가족을 버렸던 사람은 이번 생에서 가족에게 상처받는다. 일종의 거울이다. 내가 했던 것이 형태를 바꿔 나에게 돌아온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이 돌아오는 경험이 단순한 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음양순성을 받은 한 사람이 이런 말을 남겼다. 삶에서 겪는 어려움은 벌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것은 벌이 아니라 과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령 벌이라 하더라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더 이상 벌이 아닌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다고.
전생에서 풀지 못한 것은 숙제처럼 다음 생으로 넘어온다. 풀리지 않은 과제는 패턴처럼 반복된다.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계속 만나고, 비슷한 방식으로 상처받고, 비슷한 결말을 맞는다면, 그것은 아직 그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신호다. 시험에서 같은 문제를 계속 틀리는 학생과 같다. 문제는 조금씩 변형되어 나오지만 핵심은 같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어 전생의 모습이 현재랑 거의 비슷하고, 행동패턴도 다 비슷한데요? 그런 이야기를 하거나, 전생과 완전히 반대 성향으로 태어났는데, 왜 그런지 알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수십 생, 수백 생을 살아왔다는 데 있다. 전생의 기억은 모두 지워진다. 우리가 왜 이 집에서 태어났는지, 왜 이 부모 밑에서 자라는지, 왜 이런 성격을 가졌는지, 왜 특정한 사람에게 끌리는지를 알지 못한다. 원인은 잊었는데 결과만 경험한다. 마치 시험지는 받았는데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과 같다.
더 어려운 점은 우리가 자신의 삶을 전지적 시점에서 바라볼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일인칭 시점에 갇혀 있다. 내 감정, 내 상황, 내 입장에서만 사건을 해석한다.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하는지 억울해하고, 왜 내 인생이 이 모양인지 원망한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모든 사건에는 맥락이 있다. 과거의 원인이 현재의 결과로 나타났을 뿐이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부가 아니다. 부는 잠시 머물다 흩어진다. 귀도 아니다. 높은 지위는 이 생에서만 유효하다. 사랑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매 생마다 바뀐다. 전생에 내 자식이었던 사람이 이번 생에서는 남이고, 전생에 내 적이었던 사람이 이번 생에서는 가족이다.
남는 것은 성장뿐이다. 이번 생에서 내가 어떤 과제를 풀었는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어떤 업을 해소했는지. 그것만이 다음으로 이어진다. 도교에서는 이 성장의 과정을 수행이라 부른다. 수행은 절에 가거나 경전을 읽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직면하고, 회피하지 않고, 풀어나가는 것이 수행이다.
업의 폭발기라는 시점이 있다. 이때 온갖 불운이 몰려온다. 직업을 잃고, 건강을 잃고, 관계가 무너진다. 이것을 불행이라 할 수도 있고, 기회라 할 수도 있다. 업을 해소할 시점이 온 것이다. 그 시기에 지혜롭게 대처하면 과제를 넘어서고, 그렇지 못하면 같은 자리에 머물거나 새로운 업을 쌓는다.
본인에게 지혜가 있는지 없는지 아는 방법은 간단하다. 운이 좋을 때 쉽게 들뜨고, 운이 나쁠 때 쉽게 무너진다면 아직 배움이 부족한 것이다. 회남자(淮南子)의 새옹지마(塞翁之馬) 이야기에서 그 노인은 말을 잃어도 슬퍼하지 않았고, 말이 돌아와도 기뻐하지 않았다. 아들이 다리를 다쳐도 근심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전쟁에 끌려가지 않았을 때도 담담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것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삶이라는 것 자체가 해업(解業)의 과정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 경험하는 사건, 배우려고 애쓰는 것들 모두가 업과 연결되어 있다. 어떤 것은 떠먹여주듯 명확하게 주어지고, 어떤 것은 스스로 깨달아야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