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마음의 빛: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오래전 중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한 노파가 두 딸을 두었는데, 큰딸은 우산 장수에게, 작은딸은 신발 장수에게 시집을 보냈다. 맑은 날이면 노파는 한숨을 쉬었다. 우산이 안 팔려 큰딸이 굶을 것 같아서였다. 비가 오면 또 한숨이었다. 신발이 안 팔려 작은딸이 걱정되어서였다. 사시사철 근심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 지나가던 도인이 그 사정을 듣고 말했다. 맑은 날엔 작은딸 신발이 잘 팔리고, 비 오는 날엔 큰딸 우산이 잘 팔리니 날마다 좋은 날 아니냐고. 노파는 그제야 웃음을 되찾았다.

같은 현실인데 해석이 달라졌다. 달라진 것은 날씨가 아니라 노파의 마음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빛이란 무엇인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값싼 위로가 아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이다. 노파는 사실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처음부터 걱정할 일이 없었다. 다만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어 전체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도인이 한 일은 새로운 정보를 준 게 아니다. 가려져 있던 나머지 절반을 보여준 것이다.

왕양명이 귀주 용장으로 귀양 갔을 때를 보자. 1506년, 환관 유근의 비위를 거슬러 곤장 40대를 맞고 변방 오지로 쫓겨났다. 풍토병이 돌고, 현지인들은 말이 통하지 않았으며, 함께 온 하인들이 차례로 쓰러졌다. 객관적으로 최악의 상황이다. 그런데 왕양명은 밤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성인이 이 자리에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는 자신의 처지를 부정하지 않았다. 원망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안에서 물음을 던졌다. 3년 뒤 어느 날 밤, 홀연히 깨달음이 왔다. 심즉리. 마음이 곧 이치라는 것.

용장의 밤은 여전히 어두웠다. 달라진 것은 왕양명의 마음이다. 마음에 빛이 생기자 어둠 속에서도 길이 보였다. 훗날 그는 이렇게 썼다. 차심광명, 역부하언. 이 마음이 광명하니 다시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가 말한 광명은 외부의 조건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조건과 상관없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상태다.

노자는 화복이 서로 기댄다고 했다.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재앙 속에 복이 숨어 있고, 복 속에 재앙이 엎드려 있다. 이 말은 불행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려는 위안이 아니다. 사물의 실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가 재앙이라 부르는 것, 복이라 부르는 것은 전체의 일부분일 뿐이다. 마음이 한쪽에 사로잡히면 나머지가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 빛이 있다는 것은 전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내 안에 빛이 있으면 어두운 곳에서도 길이 보인다. 내 안에 빛이 없으면 대낮에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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