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바꾸면 운도 바뀐다
사람의 운명은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한 걸음씩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상유심생(相由心生), 경수심전(境隨心轉)이라 했다. 얼굴은 마음에서 비롯되고, 환경은 마음을 따라 바뀐다는 뜻이다.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고 싶다면 먼저 세 가지 마음의 상을 깨뜨려야 한다. 이 파상의 과정이 바로 운이 트이는 시작점이다.

첫 번째는 원망하는 상을 깨는 것이다. 증국번이 이런 말을 남겼다. 불평이 지나친 자는 반드시 훗날 막히는 일이 많다고. 원망하는 사람은 눈에 부족한 것만 보인다. 한숨을 쉴 때마다 어려움에 무게가 더해지고, 불평을 할 때마다 실패로 가는 길이 닦인다. 원망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힘만 빼앗아 간다. 손발을 묶어 제자리에 서게 만들고, 기회가 지나가는 것을 그저 바라보게 만든다. 명나라 때 편찬된 우리자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바닷가에 사는 농부의 아내가 있었다. 살림이 궁핍했다. 그녀는 매일 바다를 향해 울부짖으며 운명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했다. 왜 자신은 이토록 고되게 일해도 거친 밥만 먹어야 하는지, 바다의 물고기와 새우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편히 사는데 말이다. 해신이 이 소리를 듣고 꿈에 나타나 말했다. 내일 물이 빠지면 모래사장에 소금이 나타날 것이니, 거두어 팔아 살림에 보태라고. 다음 날 농부의 아내는 정말로 모래사장에 소금이 하얗게 펼쳐진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녀는 한 번 흘끗 보더니 다시 바다를 향해 울부짖었다. 하늘이시여, 왜 소금입니까. 이 하얀 것들이 무슨 소용입니까. 제가 원하는 건 진주와 보석인데요. 해신은 탄식하며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농부의 아내는 여전히 날마다 원망만 했다. 모래사장의 소금을 지키고 서서도 거두어 밥벌이에 보탤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남을 탓하지 말라고. 원망은 눈을 가리고 마음을 비틀어 현실이 주는 것들을 깔보게 만든다. 원망을 멈추는 것이 운을 바꾸는 첫걸음이다. 그것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원망에 쓰는 시간과 힘을 아껴서 살피고 움직여라. 원망하는 상을 깨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눈이 밝아지며 손이 부지런해진다.
두 번째는 따지는 상을 깨는 것이다. 옛말에 그릇이 크면 복도 크고, 속셈이 깊으면 재앙도 깊다 했다. 작은 것까지 따지는 것은 영리해 보이지만 실은 자기 복의 길을 조금씩 막는 일이다. 너무 정확히 계산하면 인정이 떠나가고, 너무 많이 다투면 외로움이 찾아온다. 마음의 그릇이 작아지면 담을 수 있는 복도 당연히 줄어든다. 명나라 만력 연간에 작은 마을에 두 명의 두부 장수가 있었다. 장성과 이명이라 했다. 두 좌판이 나란히 붙어 있었고 장사도 비슷비슷해서 처음에는 별 탈 없이 지냈다. 그러다 좌판 경계선 한 치 때문에 다툼이 시작됐다. 오늘은 네가 내 벽돌을 옮기고, 내일은 내가 네 판자를 밀었다. 날마다 싸우니 손님들이 보고 피해 다녔고 장사는 점점 시들해졌다. 어느 날 늘 두부를 사던 어르신이 못 보겠다며 장성에게 말했다. 젊은이, 이 한 치 땅을 놓고 싸워서 속이 시원하냐. 두부를 팔아야 돈이지. 장성은 멍해졌다. 텅 빈 좌판을 보며 며칠간 답답했던 것을 떠올리니 갑자기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그는 먼저 자기 좌판을 한 자 뒤로 물렸다. 이명이 그걸 보더니 자기 물건도 슬며시 안쪽으로 옮겼다. 가운데 빈 공간이 오히려 손님들이 멈춰 서기 좋게 만들었다. 더 기막힌 건 지나가던 부자 상인이 이 자리가 깔끔하고 사람도 늘어나는 걸 보고 옆에 찻집을 열었다는 것이다. 덩달아 두 집 두부 장사가 모두 잘됐다.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다. 길이 좁은 곳에서는 한 걸음 양보하여 남이 지나가게 하고, 맛이 진한 것은 삼 분 덜어 남에게 나눠 주라고. 따지는 상을 깨면 마음이 넓어지고 길도 넓어진다. 사소한 일에 매달리지 않고 푼돈까지 다투지 않으면 사람이 훨씬 가볍게 산다. 버려야 얻는다. 쓸데없는 계산을 내려놓고 자기 성장과 선의에 집중하면 돕는 사람이 늘고 순조로운 일도 많아진다.
세 번째는 분노하는 상을 깨는 것이다. 속담에 성내는 생각이 한 번 일어나면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린다 했다. 분노라는 불은 당장의 이성만 태우는 게 아니다. 오래 쌓아온 복의 뿌리까지 태워버린다. 화가 치밀면 사람은 감정의 노예가 되어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결국 남을 다치게 하고 자기 덕과 인연을 잃는다. 당나라 때 장안 서시에 오장궤라는 약방 주인이 있었다. 부지런한 사람이었지만 성깔이 불같았다. 어느 날 수수한 차림의 노인이 약을 지으러 왔다가 약재 하나의 품질이 좀 떨어진다며 점원에게 의견을 냈다. 안쪽에서 듣고 있던 오장궤가 버럭 화를 내며 카운터 밖으로 뛰쳐나왔다. 노인의 코앞에서 손가락질하며 호통쳤다. 마음에 안 들면 딴 데 가서 사시오. 여기서 떠들지 말고. 노인은 더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떠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인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어의 출신이었다. 본래 몇몇 약방을 둘러보고 궁중 납품처로 추천하려던 참이었다. 이 일로 오장궤의 가게는 당연히 탈락했다. 게다가 손님에게 무례했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지면서 장사는 날로 쪼그라들었다. 증광현문에 이런 말이 있다. 한때를 참으면 바람 잔잔하고 물결 고요해지며, 한 발 물러서면 바다가 넓고 하늘이 트인다고. 마음에 안 드는 일을 만났을 때 먼저 속으로 셋을 세며 분노를 식혀라. 마음이 차분해지면 생각이 맑아지고 해결책이 떠오른다. 귀인은 온화하고 후덕한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어 하며, 기회도 냉정할 때 찾아오는 법이다. 매일 아침 잠깐 고요히 앉아 스스로에게 일러두어라. 오늘은 내가 감정의 주인이 되겠다고. 바깥 상황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얼굴의 긴장이 풀리고 막혔던 운이 트이기 시작한다. 마음의 불을 끄고 공덕의 숲을 지켜라. 복은 저절로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요범사훈에 이런 구절이 있다. 명은 스스로 짓고 복은 스스로 구한다. 겉의 환경은 고될 수 있지만 안의 경지는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 파상이란 마음을 묶는 족쇄를 깨는 것이고, 복을 담을 공간을 여는 것이다. 눈썹이 펴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며 안에서 빛이 비쳐 나올 때, 좋은 운은 그림자처럼 따라붙게 마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