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지식 경제 붕괴
지식이 디플레이션 되는 시대라는 말이 나온다. OpenAI의 CEO 샘 알트만이 자기 아이는 AI보다 똑똑해질 수 없으니 대학에 갈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고 했고, 구글과 바이두에서 AI 사업을 이끌었던 앤드류 응은 전통적인 컴퓨터공학 학위가 AI 시대에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지식 경제가 붕괴하고 판단 경제가 부상한다는 분석도 있다. AI가 지식을 하이퍼인플레이션처럼 싸고 풍부하게 만들어서 학위라는 지식 신호가 무가치해진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한복판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스탠포드 컴퓨터공학과 졸업생들이 취업난을 겪는다. LA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예전에는 10명의 주니어 개발자가 하던 일을 이제는 2명의 시니어 개발자와 AI 어시스턴트가 처리한다. 스탠포드 디지털경제연구소의 연구 결과, 22세에서 25세 사이 코더들의 일자리가 2022년 말 정점 대비 20% 가까이 줄었다. AI 경쟁에 노출된 직종은 신규 채용이 13% 감소했다. 스탠포드 생명공학과 얀 리파르트 부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스탠포드 컴퓨터공학 졸업생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미친 일이다, 3년 전만 해도 내가 멘토링하던 모든 학부생들이 좋은 회사에 취업했다, 그게 바뀌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많은 학생들이 5년차 석사 과정에 등록한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것을 패닉 석사라고 불렀다. 취업 시장이 나아지길 기대하며 1년을 더 학교에 머무르는 것이다. MIT 전기공학 및 컴퓨터공학 석사 과정 등록자 수가 2023년 241명에서 2024년 303명으로 급증했다. 조지아공대의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취업 시장이 나빠지고 있어서 1년짜리 석사 과정에 등록했다, 인턴십을 한 번 더 하려고, 완전히 패닉 석사였다.
학위를 더 쌓으면 뭔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다.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지식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최근 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컴퓨터공학 졸업생의 실업률은 6.1%다. 컴퓨터공학과가 아니라 철학과 졸업생의 실업률은 3.2%다. 미술사학과는 3%다. 언론학과도 4.4%로 컴퓨터공학보다 낫다. 10년간 코딩을 배우라고 조롱받던 전공들이 코딩 전공보다 취업이 잘 된다. MIT, 스탠포드, 카네기멜론, UC버클리 같은 최고 명문대 컴퓨터공학과 졸업생들의 전체 취업률도 2020년대 초반 80% 이상에서 2024년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세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다. 첫째, AI가 코딩 업무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는 2024년에 회사 신규 코드의 25%가 AI로 작성된다고 했고,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는 2025년 4월 기준 20에서 30%라고 했다. 앤트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3개월에서 6개월 안에 AI가 코드의 90%를 작성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둘째, 테크 기업들이 대규모 해고를 단행했다. 2024년에 15만 명 이상, 2025년에 10만 명 이상의 테크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경력 있는 개발자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와 신입들과 경쟁하게 됐다. 셋째, 대학들이 수요가 붕괴되는 시점에 공급을 두 배로 늘렸다. 컴퓨터공학 학사 학위 취득자가 2013년 5만 1천 명에서 2022년 11만 2천 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아이러니가 처참하다. 10년 넘게 테크 기업 경영자들이 컴퓨터공학을 부의 보증된 경로라고 홍보했다. 이제 같은 기업들이 AI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자신들이 학생들에게 추구하라고 권장했던 그 일자리들을 없애고 있다.
한편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있다. 구글, 애플, IBM, 테슬라, 월마트, 뱅크오브아메리카 같은 기업들이 학위 요건을 없앴다. 2024년 인텔리전트닷컴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33%가 일부 직종에서 학사 학위 요건을 폐지했고, 추가로 25%가 2025년까지 그렇게 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IBM의 전 CEO 지니 로메티는 이렇게 말했다. 클라우드, 사이버보안, 금융 운영, 많은 헬스케어 직종은 4년제 학위 없이 시작할 수 있다. 구글의 전 인사 담당 수석부사장 라즐로 복은 이렇게 말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세상에서 자기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들이 예외적인 인재들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한다.
기업들이 학위 대신 보는 것은 무엇인가.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어본 경험, AI 도구를 활용할 줄 아는 능력, 그리고 판단력이다. 2024년 채용 담당자 조사에서 70%가 AI가 인턴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고 답했다. 57%는 인턴이나 신입보다 AI의 결과물을 더 신뢰한다고 했다. AI가 할 수 있는 일을 왜 학생에게 가르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겠는가.
하버드 연구팀이 2015년부터 2025년까지 28만 5천 개 미국 기업과 6천 2백만 명의 노동자를 분석했다. 기업이 생성형 AI를 도입하면 6분기 내에 주니어 고용이 9에서 10% 감소하는 반면, 시니어 고용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해고가 아니라 채용 동결로 일어나는 일이다. 핑크슬립이 아니라 침묵으로 한 세대가 노동시장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CIO 매거진의 보도에 따르면 미래의 개발팀은 이렇게 구성될 것이다. 제품 관리자 또는 비즈니스 분석가, UX 디자이너, 그리고 AI 도구로 프로토타입을 생성한 뒤 코드를 다듬어 출시하는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나머지는 AI가 처리한다. 한 시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이렇게 말했다. 4년 전에는 내가 보일러플레이트 코드를 작성하는 주니어 개발자였다, 깔끔하게 머지되는 모든 PR이 자랑스러웠다, 오늘날 신입들이 첫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걸 본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회사들이 이렇게 묻기 때문이다, 9만 달러짜리 주니어를 왜 뽑지, 깃허브 코파일럿은 10달러인데.
AI가 인간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빨리 검색하고, 더 정확하게 정리한다. 이건 이미 현실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는 건 무엇인가. 세계경제포럼은 비판적 사고, 창의성, 윤리적 추론, 감성 지능을 내구성 스킬이라고 불렀다. 공통점이 있다. 전부 지식이 아니라 판단에 관한 것이다.
지식은 무엇을 아는가의 문제다. 판단은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다. AI는 전자를 해결했다. 후자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어떤 정보를 신뢰할지, 어떤 방향으로 갈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지. 이건 데이터로 학습되지 않는다. 경험과 실패와 선택의 축적으로만 만들어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쇄술이 등장했을 때 필경사의 가치가 사라졌다. 계산기가 나왔을 때 주산 실력은 쓸모없어졌다. 검색엔진이 나왔을 때 암기력의 가치가 떨어졌다. 매번 같은 패턴이었다. 기술이 특정 능력을 대체하면 그 능력의 가치는 급락하고, 대신 그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의 가치가 올라갔다. 지금 대체되는 건 지식 그 자체다. 정보를 모으고, 정리하고, 전달하는 모든 과정이 자동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올라가는 건 뭔가. 그 정보로 무엇을 결정하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정하는 능력이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임원이 이런 말을 남겼다. 수십 년간 수천 명의 대졸자를 채용했다, 꾸준히 더 나은 성과를 낸 건 인문학, 예술, 교양학부 출신이었다, 더 적응력 있고, 사려 깊고, 솔직히 마케팅이나 커뮤니케이션이나 경영학 출신들보다 훨씬 앞섰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다루는 것이다. 정보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판단하는 것이다. 학위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