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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서 사람의 경쟁력은?

1850년대 피츠버그의 진흙탕 길을 뛰어다니던 소년이 있었다. 앤드류 카네기. 스코틀랜드에서 이민 온 가난한 직조공의 아들이었다. 열세 살에 방직공장에서 실패를 갈아 끼우는 일을 시작했고, 주당 72시간 노동에 1달러 20센트를 받았다. 두 세대가 지나지 않아 그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카네기의 성공 비결을 연구한 나폴레온 힐은 서른한 가지 특성을 정리했는데, 그중 핵심은 ‘사람 보는 눈’이었다. 카네기 스틸이 수억 달러의 가치를 지닐 수 있었던 건 그가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기술이 아니라 판단력이었다. 강철이 아니라 사람을 읽는 능력이었다.

노션의 공동 창업자 이반 자오(Ivan Zhao)가 2025년 말 쓴 에세이가 화제다. 모든 시대는 기적의 재료(miracle material)가 정의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황금기에는 강철이, 디지털 시대에는 반도체가 그랬듯이, 지금은 AI가 ‘무한한 지능’이라는 재료로 세상을 다시 짓고 있다고 한다. 자오는 자신의 공동 창업자 사이먼 라스트를 예로 든다. 한때 ’10배 엔지니어’로 불리던 그가 이제는 코드를 직접 쓰지 않는다. 서른에서 마흔 개의 AI 에이전트를 지휘하며, 점심 먹으러 가기 전에 작업을 할당하면 AI가 밤새 일한다. 사이먼은 더 이상 프로그래머가 아니다. 무한한 지능의 관리자가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모두가 같은 AI 도구를 쓸 수 있는 세상에서,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버드 경영대학원과 UC버클리의 공동 연구가 흥미로운 결과를 내놓았다. AI는 인간의 판단이나 경험을 대체할 수 없으며, AI에 대한 접근성만으로는 기술 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AI 도구를 쓰더라도 결과물의 차이는 사용자의 판단력에서 갈렸다. 좋은 아이디어와 평범한 아이디어를 구분하는 능력, 장기 전략을 세우는 능력은 AI가 대신해주지 못했다.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이 최근 인터뷰에서 한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AI는 결과물에만 집중하지만, 우리는 과정을 잊는다고 했다. 책이 존재한다고 해서 똑똑해지는 게 아니라, 그 책을 직접 썼기 때문에 똑똑해진다는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선형적으로 배열하고,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그 고통스러운 여정이 성장을 만든다. AI는 사과문을 대신 써줄 수 있지만, 사과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관계를 해결해줄 수는 있어도, 관계에 투자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효율성은 쌓이지만 회복탄력성은 쌓이지 않는다.

링크드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직장인 열 명 중 여섯 명이 소프트 스킬이 이전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답했다. AI 기술을 배우는 것이 경력에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하면서도, 실제로 승진과 성과를 만들어낸 건 의사소통, 문제 해결, 협업 능력 같은 것들이었다.

도교에서는 허(虛)를 말한다. 비어 있어야 담을 수 있고, 낮추어야 흐를 수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가 그것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뭇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 AI가 모든 지식을 순식간에 불러올 수 있는 시대에, 정보량으로는 승부할 수 없다. 더 빨리, 더 많이 아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배워왔지만, AI는 이미 인간보다 빠르고 많이 안다.

그렇다면 남는 건 무엇인가.

카네기에게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다.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는 판단하지 않았지만, 일단 판단을 내리면 신속하고 단호하게 움직였다. 그는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기꺼이 곁에 두었고, 권한을 위임했으며, 직원들이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했다. 기술이 아니라 품격의 문제였다.

1976년에 컴퓨터 과학자 조지프 바이젠바움이 경고했다. 인간을 존중하고 돌보는 위치에서 인간을 기계로 대체하면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고 소외감이 생긴다고. 그래서 판사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AI가 더 정확하고 합리적일 수 있어도, 삶을 바꾸는 결정에는 여전히 인간의 판단이 필요하다. 유럽연합이 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에 ‘자동화된 처리에만 기반한 결정의 대상이 되지 않을 권리’를 포함시킨 이유다.

자오의 에세이로 돌아가면, 그는 AI를 강철에 비유한다. 강철이 등장하기 전에는 벽돌과 나무로 건물을 지었고, 6층이나 7층이면 무너졌다. 강철이 뼈대가 되면서 수십 층 건물이 가능해졌다. 마찬가지로 AI가 조직의 뼈대가 되면, 수천 명 규모의 조직도 스타트업처럼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주간 2시간짜리 정렬 회의가 5분짜리 비동기 검토로 바뀌고, 세 단계 결재가 필요했던 의사결정이 몇 분 만에 이뤄진다.

하지만 건물의 높이를 결정하는 건 강철이 아니다. 어떤 건물을 지을 것인가, 누구를 위한 건물인가를 결정하는 건 여전히 사람이다.

사이넥의 말처럼, 실수가 드라마를 만들고, 고군분투가 의미를 만들고, 노력이 가치를 만든다. AI는 마찰을 제거하지만, 마찰과 함께 의미도 사라진다. 완벽함은 더 이상 인상적이지 않다. 오히려 의심스럽다. 일본에서 와비사비(わびさび)라고 부르는 개념이 있다. 불완전함의 아름다움. 손으로 빚은 도자기의 고르지 않은 표면, 붓자국이 보이는 그림.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결함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AI가 모든 출력물을 대신할 수 있다면, 살아남는 기술은 AI가 복제할 수 없는 것들이다. 공감, 갈등 해결, 감정 조절, 용기. 이것들은 소프트 스킬이 아니다. 생존 기술이다.

노션에는 현재 1,000명의 직원 외에 700개 이상의 AI 에이전트가 있다고 한다. 회의록을 작성하고, IT 요청을 처리하고, 신입 직원의 온보딩을 돕고, 주간 보고서를 쓴다. 자오는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진짜 이득은 상상력과 관성에 의해서만 제한된다고.

그런데 상상력은 어디서 오는가. 관성을 깨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카네기는 서른세 살에 이미 연간 5만 달러를 벌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는 공허함을 느꼈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은 매우 빈 삶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1889년에 ‘부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을 썼다. 부자는 잉여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죽을 때까지 3억 5천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품위는 이런 거다. 해야 할 일을 알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아는 것.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 AI가 무한한 지능을 제공해도, 그 지능을 어디에 쓸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이 결정한다. 자오의 말대로 재료를 장악하는 자가 시대를 정의한다면, 재료의 방향을 정하는 건 판단력이고 품위다.

피렌체는 40분이면 걸어서 횡단할 수 있었다. 사람의 걸음걸이와 목소리가 닿는 범위 안에서 도시가 설계되었다. 강철 골조와 증기 철도가 등장하면서 도쿄 같은 메가시티가 탄생했다. 더 혼란스럽고 익명적이지만, 더 많은 기회와 자유가 있다. 자오는 지식 경제가 같은 변화를 겪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도쿄에서도 여전히 골목 식당 주인의 환대가, 장인의 손길이, 이웃의 인사가 의미를 갖는다. 규모가 커질수록 오히려 그런 것들의 가치가 올라간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속도가 아니라 해석의 깊이에, 지식의 양이 아니라 감각의 정확도에 달려 있다. 기계가 판단을 대신할수록, 인간에게 남는 일은 느끼고 해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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