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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색과 흐름

송나라 정강년간, 금나라 군대가 남하하여 송나라를 노략질했다. 금나라는 산서와 하북 지역을 내놓아야 물러가겠다고 요구했고, 친왕이 직접 협상 사절로 와야 한다고 했다. 훗날 송고종이 되는 조구는 당시 강왕 신분이었는데, 이전에 사신으로 나간 경험이 있어서 황실 인물 중에서는 그나마 일처리를 할 줄 아는 편이었다. 그래서 다시 금나라와 협상하러 파견되었다.

수행 호위 중에 관상을 잘 보는 비장이 한 명 있었다. 그가 남몰래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강왕은 기운이 아주 좋으니 앞으로 큰일을 할 사람이고, 수행하는 두 관원 경연희와 고세칙도 모두 편안하게 천수를 누릴 관상이다. 그러니 이번 사행은 반드시 무사히 끝날 것이다. 다만 자정전학사 왕운만은 기색이 아주 나빠서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

강왕 일행이 변경의 하북 자주에 도착했을 때, 당시 자주를 지키던 관원은 유명한 주전파 종택이었다. 종택은 조구에게 간곡히 권했다. 금나라의 야심이 크니 절대로 화해를 구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반면 왕운은 줄곧 협상을 담당해온 사람이었다. 강왕 이전에도 대금 특사로서 확고한 주화파였다. 왕운은 반드시 금나라와 협상해야 하고, 설령 시간을 끄는 것뿐이라도 괜찮다고 주장했다. 조구의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온 집안의 목숨을 걸고 보증하겠다며, 금나라가 절대로 조구를 억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구 본인은 모호한 태도를 취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왕운 쪽에 더 기울어 있었다. 협상하러 가면 반드시 목숨이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협상하지 않으면 당장 싸움이 벌어질 테고, 자기가 최전선에 있으니 분명 먼저 죽을 것이다. 양쪽을 저울질해보면 사신으로 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주 백성들은 협상에 극도로 반감을 품고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협상의 댓가였기 때문이다. 협상이 성사되면 넘겨지는 것이 바로 그들의 땅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조구를 막아서며 결사항전을 청원했다. 민심이 격앙된 와중에 누군가 왕운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저 매국노가 농간을 부리는 것이다, 다들 때려라! 몇 사람이 왕운을 말에서 끌어내려 주먹세례를 퍼부었고, 왕운은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다.

조구도 크게 놀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머리를 돌려 남쪽으로 갔다. 금나라는 협상이 결렬되자 계속 남하했고, 송휘종과 송흠종 그리고 다른 황자들까지 모조리 잡혀가 흑룡강으로 끌려가 포로 신세가 되었다. 오직 조구만 전화위복으로 유일하게 탈출에 성공한 황자가 되었고, 이런 연유로 남쪽에서 즉위하여 남송을 세웠다.

송사에서는 이 일을 평가하며 말한다. 만약 왕운이 죽지 않았다면 고종은 반드시 북쪽으로 갔을 것이고, 그러면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모두 고종에게 천명이 함께하고 있다고 여겼다.

왕운의 행위는 자신도 모르게 남송 건립이라는 큰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었고, 하늘의 뜻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 셈이었다. 그래서 그의 얼굴에는 순식간에 흉험한 기색이 나타났다. 만약 왕운이 눈치가 있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두 사람처럼 평안하게 남송 시대까지 살았을 것이고, 제 명대로 살다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필 정반대의 길을 걸었고, 비참한 최후는 필연이었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대운이라는 것이 있다. 개인에게 찾아오는 큰 운의 흐름인데, 사실 개인의 대운보다 더 큰 것이 시대의 대세다. 왕운은 개인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었을 수 있다. 그의 논리도 나름 일리가 있었다. 협상으로 시간을 벌면 전쟁 준비를 할 수 있고, 당장의 파국은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읽지 못한 것이 있었다는 점이다. 역사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려 하는지, 그 거대한 물줄기를 보지 못했다.

사주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명반만 들여다보면 안 된다. 그 사람이 살아가는 시대의 기운, 그가 몸담은 조직의 흥망, 그가 속한 나라의 국운까지 함께 봐야 한다. 아무리 좋은 사주를 타고났어도 망해가는 배에 올라타면 함께 가라앉는다. 반대로 평범한 사주라도 떠오르는 흐름에 올라타면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가게 된다.

왕운에게 나타난 흉험한 기색은 그의 사주가 나빠서가 아니었다. 그가 대세를 거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상에서 기색이라는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어떤 흐름에 올라타느냐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같은 날 같은 일행이었던 경연희와 고세칙은 아무 말 없이 상황을 지켜보았고, 결국 천수를 누렸다. 왕운만 목소리를 높였고, 그날 죽었다.

요즘 세상을 보면 비슷한 일들이 많다. AI가 밀려오는데 기존 방식을 고수하겠다고 버티는 사람들, 산업 구조가 바뀌는데 과거의 영광에 매달리는 기업들,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면서 자기 논리가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들. 그들의 논리가 틀린 것은 아닐 수 있다. 단지 대세를 거스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대세를 거스르는 사람의 얼굴에는 어김없이 어떤 기색이 나타난다.

국가도 그런 기색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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