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식인구법(識人九法)

호랑이와 표범은 타기 어렵고, 사람 마음은 배 속에 가려져 있다. 옛 사람들의 말이다. 지금도 유효하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세상이 바뀌어도, 상대의 속내를 읽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인간과 접촉하는 일 아니더냐? 특히 업무적으로, 애정에 있어서, 어떤 사람과 함께 하냐가 인생의 성패를 가리지 않더냐?
기원전 4세기, 장자는 이 문제를 이미 고민했다. 장자 열어구(列御寇)편에 구징(九徵)이라는 것이 나온다. 사람을 알아보는 아홉 가지 방법이다.
첫째, 멀리 보내놓고 충성을 본다.
원사지이관기충(遠使之而觀其忠). 거리를 두면 진심이 드러난다. 곁에 있을 때는 잘하다가 멀어지면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두 사람이 있었다. 범려와 문종이다. 둘 다 일등공신이었다. 그런데 구천이 천하의 맹주가 되자, 범려는 갑자기 월나라를 떠났다. 떠나면서 문종에게 편지를 보냈다.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범려는 구천이 고난은 함께해도 영화는 함께 누릴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멀리서 관찰한 결과였다. 문종은 그 충고를 듣고도 월나라를 떠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천에게 죽임을 당했다.
둘째, 가까이 두고 공경을 본다.
근사지이관기경(近使之而觀其敬). 친해지면 허물이 보인다. 가까워졌다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친해져도 예의를 잃지 않는 사람이 있다.
1983년 스티브 잡스는 펩시콜라 사장 존 스컬리를 애플 CEO로 영입하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보낼 건가요,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꿀 건가요?” 스컬리는 감동받아 애플로 왔다. 둘은 가까워졌다.
2년 후, 잡스는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났다. 스컬리가 이사회를 움직여 그를 해고한 것이다. 가까이 두고 보니, 잡스의 독단적인 의사결정과 전횡이 눈에 들어왔던 모양이다. 물론 반대로 보면, 잡스 역시 스컬리를 잘못 본 셈이다. 가까이 두었지만 상대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
셋째, 번잡한 일을 맡기고 능력을 본다.
번사지이관기능(煩使之而觀其能). 복잡하고 귀찮은 일 앞에서 사람의 그릇이 드러난다. 투덜대며 대충 하는 사람이 있고, 묵묵히 정리해내는 사람이 있다.
넷째, 갑자기 질문을 던져 지혜를 본다.
졸연문언이관기지(卒然問焉而觀其知). 준비 없이 받은 질문에 대한 반응에서 사고의 깊이가 나타난다.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일수록 상대의 사유 방식이 드러난다.
다섯째, 급하게 약속을 잡아 신의를 본다.
급여지기이관기신(急與之期而觀其信). 촉박한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이 있고, 핑계를 대며 빠지는 사람이 있다. 여유가 있을 때는 누구나 약속을 지킬 수 있다. 문제는 여유가 없을 때다.
여섯째, 재물을 맡기고 인품을 본다.
위지이재이관기인(委之以財而觀其仁). 돈 앞에서 사람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많은 관계가 금전 문제로 틀어진다. 청렴함은 말로 증명되지 않는다.
일곱째, 위기를 알리고 절개를 본다.
고지이위이관기절(告之以危而觀其節). 잘 나갈 때 주변에 사람이 많은 건 당연하다. 어려울 때 누가 남는지가 중요하다.
한나라 건국의 일등공신 한신은 유방을 천하의 패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천하가 평정되자 유방은 한신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초왕에서 회음후로 강등되고, 결국 여후의 계략에 걸려 죽임을 당했다. 한신은 죽기 전에 이렇게 탄식했다.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기고, 새를 다 잡으면 활은 치워진다.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나는 삶겨 마땅하구나.”
같은 시기 장량은 달랐다. 유방이 제나라 땅 3만 호를 주겠다고 했지만 사양했다. 대신 유방과 처음 만났던 작은 고을 유현만 받았다. 이후로는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신선술을 배우겠다며 두문불출했다. 한신이 죽고, 팽월이 죽고, 경포가 반란을 일으켜 진압당하는 동안 장량은 조용히 천수를 누렸다.
둘의 차이는 단순하다. 상황이 바뀌었을 때 자신을 바꿀 수 있었느냐의 문제다. 한신은 전쟁 중에 필요했던 사람이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전쟁 때의 방식대로 행동했다. 장량은 상황을 읽었다. 군주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파악했다.
여덟째, 술에 취하게 하고 본성을 본다.
취지이주이관기측(醉之以酒而觀其則). 술은 자제력을 느슨하게 만든다. 취했을 때의 모습이 평소에 억누르고 있던 본모습일 수 있다. 주사가 심한 사람은 평소에 무언가를 많이 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홉째, 여러 부류의 사람과 섞이게 하고 태도를 본다.
잡지이처이관기색(雜之以處而觀其色). 상대에 따라 태도가 급변하는 사람이 있다. 윗사람에게는 굽신거리고 아랫사람에게는 거만한 부류다. 누구에게나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고, 상대의 지위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장자가 이 아홉 가지를 제시한 건 2400년 전이다. 스마트폰이 생기고 인공지능이 등장했지만,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 아홉 가지를 실제로 적용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한두 번 만나서는 알 수 없다. 장자도 그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구징(九徵)이라 했지, 일징(一徵)이라 하지 않았다.
범려는 구천을 오래 보았기에 떠날 수 있었다. 장량은 유방을 오래 보았기에 물러날 수 있었다. 잡스는 스컬리를 오래 보지 않고 영입했다가 쫓겨났다. 사람을 아는 일에는 지름길이 없다.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