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선하길 원하지 않는다

직장생활 10년차가 넘어가는 사람들은 신입사원 때와 지금이 다르다고 말한다. 신입 때는 동료가 업무에 어려움을 겪으면 먼저 나서서 도왔다. 야근하는 선배를 보면 자발적으로 남아 함께 일했다. 그런데 5년쯤 지나자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와준 동료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함께 야근한 선배는 승진할 때 자신의 공으로만 보고했다. 더 나쁜 경우도 있었다. 친절하게 알려준 업무 노하우를 이용해 자신을 제치고 승진한 후배도 있었다.
2017년 한국행정연구원이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 종사자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가 있다. “직장에서 친절하고 협조적인 태도가 경력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62%가 “아니다” 또는 “오히려 불리하다”고 답했다. 특히 30대 중반 이후 응답자의 73%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경험이 쌓일수록 선함이 불리하다는 인식이 강해지는 것이다.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Adam Grant)는 2013년 저서 “Give and Take”에서 조직 내 인간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기버(giver), 매처(matcher), 테이커(taker). 그의 연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성과 평가에서 최하위 그룹에 기버들이 가장 많았다. 그들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타인을 돕는 데 써서 정작 자신의 성과는 낮았다. 그런데 최상위 그룹에도 기버들이 가장 많았다. 차이는 무엇이었나. 성공한 기버들은 전략적으로 도움을 주었고, 테이커들을 식별해 거리를 두었다.
도교 경전 “음부경(陰符經)”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천지만물지도(天地萬物之盜), 만물인지도(萬物人之盜), 인만물지도(人萬物之盜).” 천지는 만물을 취하고, 만물은 사람을 취하고, 사람은 만물을 취한다. 이것은 세상의 작동 원리다.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로부터 무언가를 취한다. 이 냉정한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순진하게 착취당한다.
“포박자(抱朴子)” 내편에서 갈홍(葛洪)은 이렇게 말한다. “명주투암(明珠投暗)”, 밝은 구슬을 어둠 속에 던지지 말라.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에게 주면 그것은 낭비다. 도교 수행자들은 자신의 도(道)를 함부로 전하지 않는다. 상대가 준비되지 않았으면 아무리 좋은 가르침도 의미가 없다. 오히려 악용될 수 있다.
2014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 교수는 “Leadership BS”라는 책에서 조직 내 권력 동학을 분석했다. 그는 30년간 수백 개 기업을 연구하며 불편한 진실을 발견했다. 정직하고 겸손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리더들이 승진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공격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타인의 공을 가로채는 사람들이 더 빨리 올라갔다. 그는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선한 사람이 이긴다는 믿음은 위험한 환상”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냉소적인 테이커가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계속 착취당하는 순진한 기버로 남아야 하는가.
장자는 “인간세(人間世)”편에서 “이신처물(以身處物)”을 말한다. 몸으로 세상에 처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세상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다. 세상이 냉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물들지 않는다.
핵심은 기대를 버리는 것이다. 타인에게 선을 베풀 때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감사를 기대하지 않는다. 인정받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가 있으면 실망이 온다. 실망이 쌓이면 분노가 된다. 분노는 냉소로 변한다. 그렇게 선한 마음은 사라진다.
2016년 미국 노트르담 대학교의 크리스티안 스미스(Christian Smith) 교수는 “이타적 행동의 역설”을 연구했다. 보답을 기대하며 선행을 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선행을 멈췄다. 반면 아무 기대 없이 선행한 사람들은 그것을 지속했고, 더 높은 삶의 만족도를 보였다.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 마음은 더 평안해진다.
그러나 무조건적 선행은 어리석음이다. 도교의 “태평경(太平經)”에는 “선악구분(善惡俱分)”이라는 개념이 있다. 선과 악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같은 태도로 대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테이커를 식별하고, 거리를 두는 것은 생존 전략이다.
경계를 어떻게 그을 것인가.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상호성(reciprocity)이 아닌 자발성(voluntariness)으로 선행한다. 도움을 주되 그것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는다. 이것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다. 기대를 버리면 배신당할 일도 없다.
둘째, 관찰한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한다. 2011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테이커들은 초기에는 기버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3-4회 상호작용 후 본성이 드러난다. 누군가 지속적으로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호다.
셋째, 차별적으로 베푼다. 도교의 “선악응보(善惡應報)” 사상은 맹목적 박애가 아니다. 선한 사람에게는 선으로, 악한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하게 대한다.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친절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선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더 많이 준다.
일본 교토대학의 야마기시 토시오(Yamagishi Toshio) 교수는 1999년 신뢰 연구에서 “높은 신뢰자(high truster)”와 “경계하는 신뢰자(vigilant truster)”를 구분했다. 높은 신뢰자는 누구나 믿는다. 그래서 자주 속는다. 경계하는 신뢰자는 신뢰하되 검증한다. 그들은 관계에서 배신을 덜 경험하면서도 깊은 유대를 형성했다.
사회생활에서 선한 본성을 지키는 것은 균형의 문제다. 세상에 대한 냉정한 인식과 내면의 따뜻함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이다. 장자는 “외화내불화(外化內不化)”라고 했다. 겉으로는 세상에 맞춰 변화하되, 안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2020년 서울대 행복연구센터가 발표한 “한국인의 행복 연구”에서 흥미로운 데이터가 나왔다. 행복도가 높은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선택적 이타심”이었다. 그들은 봉사활동을 하거나 기부를 했지만, 동시에 착취적 관계는 단호히 정리했다. 무조건적 희생이 아니라, 의미 있는 곳에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선함은 약함이 아니다. 선함은 강함의 표현이다. 세상의 악의를 알면서도 자신의 선의를 지킬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강함이다. 그러나 그 강함은 경계와 함께 온다. 누구에게 마음을 열고, 누구에게 거리를 둘지 아는 지혜 말이다.
도교 수행자들이 냉정하고 무정해보이는 이유는 세상이 싫어서가 아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세상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때로는 물러나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나아갈 때, 누구에게 선을 베풀지 선택한다.
기대 없이 주되, 함부로 주지 않는다. 도움을 주되, 착취당하지 않는다. 선한 마음을 유지하되, 순진하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