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강자와 약자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재능인가, 환경인가, 운인가?
아니다. 바로 ‘감정 개무시력’이다.
강자는 감정이 없는 기계가 아니다. 그들도 분노하고, 좌절하며, 기뻐하고, 슬퍼한다. 다만 한 가지가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무시하고 목표를 향해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보통인 이유
“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서…” “너무 우울해서 못하겠어…” “기분이 너무 좋아서 놀고 싶어…”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다. 감정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작하기도 전에 감정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무너진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도 며칠 못 가 “의욕이 없어서” 포기한다. 운동을 결심했다가도 “오늘은 피곤해서” 쉰다.
맹자(孟子)는 말했다.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 근골을 피로하게 한다(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마음이 조금만 괴로워도, 근골이 조금만 피로해도 즉시 포기한다.
진정한 강자의 모습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서 대패하고 엘바 섬에 유배되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감정에 굴복하지 않았다. 탈출을 감행했고, 다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비록 워털루에서 최종 패배했지만, 그의 ‘감정 개무시력’은 역사에 길이 남았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이런 구절이 있다. “통솔자는 분노하지 않는다(主不可以怒而興師).” 진정한 지휘관은 분노라는 감정에 휘둘려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감정을 철저히 통제하고 냉정하게 판단한다.
장거리 달리기의 철학
마라톤을 뛰어본 사람은 안다. 10km를 넘어서면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20km가 되면 온몸이 비명을 지른다. 30km에 이르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런데 완주하는 사람들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들은 고통이 없어서가 아니다. 고통을 무시하고 달리는 것이다. “아프다”는 신호를 뇌가 보내도,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며 계속 달린다. 이것이 바로 실행력이다.
논어의 가르침
공자는 “군자는 화합하되 동조하지 않고, 소인은 동조하되 화합하지 않는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고 했다.
이를 감정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군자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을 지킨다. 반면 소인은 그때그때의 감정에 따라 행동이 바뀐다.
초강력 의지력의 본질
진시황은 전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배신과 암살 위협을 겪었다. 형가의 암살 시도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러나 두려움에 굴복했는가? 아니다. 더욱 강력한 의지로 통일 대업을 완수했다.
한신(韓信)은 젊은 시절 건달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당했다. 분노와 수치심이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감정을 삼키고 때를 기다렸다. 결국 초한전쟁의 결정적 인물이 되었다.
실천하라, 감정 따위는 무시하고
왕양명(王陽明)은 “앎과 행함은 하나다(知行合一)”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알면서도 행하지 못한다. 왜인가? 감정이라는 변명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실천하라:
- 알람이 울리면 기분과 상관없이 즉시 일어나라
- 운동 시간이 되면 피곤함과 상관없이 운동복을 입어라
- 공부 시간이 되면 의욕과 상관없이 책을 펴라
“나는 ~한 기분이야”라는 말을 입에 담지 마라. 그 순간 당신은 이미 감정의 노예가 된 것이다.
감정을 지배하라, 그러면 운명을 지배할 것이다
니체는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감정과 싸우지 마라. 그저 무시하라. 인정하되 따르지 마라. 느끼되 지배당하지 마라.
강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이 순간의 감정 상태와 무관하게, 해야 할 일을 시작하라.
그것이 강자가 되는 길이다.
